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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주말 여친을 만나 대구 동성로를 둘러보고 옷 대충 고르고 집에 들어가려다

아무래도 전 혼자고 고기같은거 구워 먹는게 귀찮아서 대충 떄우다 보니
여친을 졸라 고깃집에 들어갔습니다.
 
동성로에서 좀 떨어진 곳인데 저희 대각선 방향으로 젊은 부부분들이 앉아계셧습니다.
아기 전용 의자에 아기도 앉힌채
 
한참 고기를 구우며 여친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그 젊은 부부분들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그쪽을 바라봤고 "아 시끄럽겠네: 라는 듯한 얼굴로 처다보았습니다.
 
그떄 참 배운분들이다 라는 광경이 펼처젔습니다.
부부분들이 일어 나시더니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아이가 우네요" 라고 말을 하며 사과를 하셧고
고기를 굽던 아내분은 계속 고기를 구우셧고
남편분이 아이를 안아 들더니 밖으로 나가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밖은 좀 떨어저 있어 정확히는 못봤습니다.
아내분은 고기를 굽더니 몇개 드시고 잘익은 건 불판위에 상추를 깔고 타지않게 놔두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안고 다시 들어왔지만 아직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분은 아내분에게 아이를 안겨주며
"하 쬐끄만게 벌써부터 아빠보다 엄마가 좋은가 보다 벌써부터 차별하네 너무하네 진짜"
 
하며 웃으셧고
주변에 이를 들으신 분들도 몇몇분들이 웃으셧습니다.
 
아내분은 남편이 들어오는거 보고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며 
"수고했어요 이제 내가 달래볼게요"
 
라고 나갔습니다.
나가시면서 분유랑 기저귀도 가저 가셧는데 이 기저귀 가저 가는것도 대단하신게
저희는 맞은편이라 식탁 밑이 보여서 본거였는데
다른 분들이 혹시라도 비위 안상하시게 식탁 밑에서 작은 가방에 넣어서 나가시더군요
 
좀 시간이 지나고 울음이 그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물론 그사이 남편분도 아내분과 마찬가지로 고기를 드시며 잘익은 부위를 상추위에 올려놓으셧고
두분은 들어오시더니 다시한번 일어나셔서 
 
"아이가 울어서 불편하셧죠? 죄송합니다" 하며 다시 사과를 하시더군요.
그 근처에 앉아 계시던 다른 남자분이 한마디 하시더군요
"어우 애가 우는게 참 예쁘던데 나중에 가수 시켜야겠어요"
아내분이 웃으시더니 "네 안그래도 그런이야기 많이 들어요!"
하는 너스레와 함께 훈훈한 광경이 펼처젔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겐 작은 장난감 하나 쥐어주고 아이는 그걸 가지고 노는 사이
두분은 식사를 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더군요
 
역시 이런말은 이런떄 하라고 있는거 같습니다
 
"아기니까 그럴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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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누명씌워져서 강제로 쫓겨난 후로

택시기사를 하는데 주변에서 굽신거리던 사람들 다 떠나고 정말 그 누구도 남지않았다고..

 

 

그냥 조용하게 차분히 말씀하시다가

허허 우리아들놈들은 이런얘기를 안받아줘서요 죄송합니다 이러시길래

 

 

제가 어디서 본건데요 어떤 사람이 자기인생은 도미노처럼 다 쓰러졌다고 글을 올렸는데 댓글로 누가 그러더라구요 위에서 보면 멋진 그림이지않겠냐구

이랬는데

 

 

가만히 들으시다가 운전대에 고개숙이시고 우시더라 인생이란건 참 뭘까... 비가 참 많이도 내린다

택시비 괜찮다고 안받으시려고 하셔서 그래도 한사코 결제

하고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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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날따라 택시기사 아저씨가 너무 친절한거야

내가 타자마자 하는 말이 아이고 예쁜 사람이 타니 뒷자석에서 빛이 나네

이러셨어 내가 아무말없이 ㅎㅎ 웃으니까

 

 

세상에 아무리 힘든일이있어도 다 이겨내야하는 법이야~ 세상이 얼마나 아름 다워요 그죠~

라고 하면서 계속 날씨가 좋으니까 기분도 좋다 이러시는거야

 

 

기사님이 그동안 행복했던 얘기를 구구절절 해주시는데 눈물이 진짜 왈칵 쏟아지더라ㅋㅋ 막 서럽게 울면서 내가 그동안 죽으려던 이유랑 막 죽거싶다 고 그러고 처음보는 사람앞에서 하소연을 ㅎ했다ㅋㅋㅋ 이십분동안..

 

 

그리고 계산할때 하시는 말이 유턴할까요?

이거였어 난 아직도 저 말이 안잊혀져... 그러고 우리집왔어

 

 

기사님 이름 꼭 외워두려고 했는데 기억이 안나

허씨 성을 가진 분이란 거 밖에.. 아저씨 덕분에 살았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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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포켓] 제부를 어떻하죠? 여동생이 2년전 위암으로 생을 달리 했습니다.

 

[썰포켓] 제부를 어떻하죠? 여동생이 2년전 위암으로 생을 달리 했습니다.

삼십대 초반 평범한 여성입니다. 여동생이 2년전 위암으로 생을 달리 했습니다. 원래 위염과 식도염을 달고 살던 동생인데 어느날 부터 먹은 것 없이 토하고 식도염때문에 힘들다며 투덜거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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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에 적은 글이 여러 사이트에 퍼져 당황했네요.
제가 오유 눈팅족인데 베오베에 있는 글을 보고 우리 제부같은 사람 또 있네했다가 다시 읽어보니
제가 썼던 글이네요.

 

제부는 내년 봄 재혼예정입니다.
상대는 저랑 각별하게 친한 동생입니다.

 

2년 전쯤 동생과 제부와 같이 술마실 자리가 있은 뒤 종종 같이 만났었습니다.
둘이 호감이 있는것 같아서 조심스레 응원을 해줬었는데 어렵게 연결되었어요.
제 동생은 왈가닥에 활발하고 여장부스타일인데 그 동생은 조용하고 말이 적고 생각이 깊은 사람입니다.

어느날 동생이 보자고 해서 만났는데 미안하다며 얘기하더라구요.
언니 제부를좋아한다고...
저는 그둘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축하한다고 했는데 제부가 마음을 안받아주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자리에서 제부불렀습니다.
제부도 이 동생한테 마음있는거 눈치챘었거든요.
제부가 오고 동생있는거 보고 당황해하는게 보였지만 앉으라하고 얘기했습니다.

 

이제 제부라 부르지 않을꺼다.
내 친오빠라 생각하고 말한다.
왜 이 애 마음 안받아주냐?
오빠도 얘 좋아하는거 안다.

좋아하는 감정 맞다.
근데 아직도 난 xx가 그립고 내 유일한 여자다.
그리고 귀한게 자란 oo이를 내가 어떻게 넘보냐

등등 한참을 얘기한것 같습니다.
동생은 한마디안하고 듣고만 있었고 저랑 제부랑 30분 넘게 말씨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부가 얘기한 결혼한 적이 있는 자기가 감히 아가씨랑 어떻게 잘하겠냐는 말을 하자마자 동생이 제부 머리를 빡 소리나게 때렸어요.
ㅋㅋㅋㅋ(죄송합니다 그때 저도 답답해서 이 벽같은 남자 쥐어박고 싶었는데 속이 다 시원했던 기분이 들어서)
평소 내향적이고 조용하던 동생이 그러니깐 저나 제부나 얼음되고...
동생은 얼굴벌개지고 손 부들부들 떨고 있고...
그러더니 애가 랩을 내뱉더니 나가버렸습니다.
기억나는대로 적겠습니다.

내가 첫번째가 안될건 안다.
그리고 지금 오빠가 이러는건 착하고 지고지순한게 아니라 등신천치인거다.
이러고 살면 좋냐?xx가 퍽이나 내 신랑 이쁘네하고 있겠다.
나도 이젠 됐다 나도 등신같은 너 트럭으로 줘도 싫다

저랑 제부 둘다 동생이 나가고도 얼어있다가 제가 빨리가서 잡으라고 후회할 인생살지말라고 제부 등떠밀었고 제부는 주저주저하다가 동생잡으러 갔습니다.
그 뒤는 제부가 동생의 맘 돌리려 노력했고 석달간 동생에게 대쉬 후에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동생 집안에서는 반대가 없던건 아니지만 제부가 제 동생을 사랑했던 지고지순한 마음을 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결혼 승낙하셨습니다.

저희집에서는 동생 패물 팔아서 사돈댁이 해주는 예물에 따로 얹어 예물보냈고요.
동생집에서 저희집에도 작게 예단비 주고 싶어하셨지만 거절하고 대신에 oo이를 딸처럼 생각해도 되겠냐며 조심히 여쭸고 동생 집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제부는 예전처럼 저희집에 매주오는건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 정도는 찾아오고 있습니다.
동생은 진짜 저희집 딸이 된듯 가끔와서 놀다가고 합니다.

둘다 너무 착하고 선남선녀라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예쁘다고 저희 부모님도 좋아하세요.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될지...
이 글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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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초반 평범한 여성입니다.
여동생이 2년전 위암으로 생을 달리 했습니다.

원래 위염과 식도염을 달고 살던 동생인데 어느날 부터 먹은 것 없이 토하고 식도염때문에 힘들다며 투덜거리던 내동생...
회사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아그런것 같다며 웃던 내 동생...

뚱뚱하다고 할 정도로 체격좋고 키도 크고 활발하던 동생이 파릿해질 정도로 살이 빠지자 병원 검진결과 이미 암세포는 위는 물론 소장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항상 넉살좋게 웃던 내 여동생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문제는 제부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가슴 아프지만 동생 잊고 새 삶을 찾아가면 다행이지만 그러질 못하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집에 들려 어머님 사위왔어요라며 엄마가 차려준 밥먹고 아빠랑 술 대작합니다.
그 자리에 동생만 없지 동생과 함께 모이던 가족풍경 그대로 입니다.
가끔은 동생은 친정왔다고 나 쉴래!외치고 내 방 침대에 잠들던 순간처럼 동생도 집에 같이 있는 기분도 듭니다.

 

 

 

부모님은 그런 제부가 고마우면서 속이 타십니다.
사부인께도 죄송하고 밝게 웃으며 이야기는 하지만 제부의 얼굴은 점점 말라가고 있습니다.

엄마가 넌지시 제부한테 이제 죽은 사람 잊고 다른 여자 만나볼 생각 없냐고 물은적 있지만 제부는 싱글싱글 웃으며 엄마!큰 아들 필요없어요?라고 넘어갈 뿐입니다.

제부가 저보다도 나이가 많아 딸 둘뿐이었던 우리집에선 이미 아들입니다.

몇 주전 동생 부부가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고 연락이 와서 엄마랑 같이 동생집에 갔었습니다.
제부는 회사에 있다고 금방 퇴근이니 먼저 가계시라고 현관 비번 가르쳐주길래 갔다가 엄마하고 펑펑 울었습니다

동생 있을 때와 변한게 없는 집...
화장실에는 동생의 칫솔도 그대로고 옷방에는 동생이 즐겨입던 옷들이 금방이라도 입을 수 있게 깨끗하게 세탁되어져 있었습니다.
동생 화장대엔 동생이 쓰던 화장품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먼지 한 톨 없었고요
쓰는 지금 눈물만 나네요.

 

 

제인에어를 너무 좋아해서 책이 헤져서 같은 책을 세권이나 샀었는데 침실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어요.

제부가 퇴근 후 오고 엄마는 제부 붙들고 오열하며 우셨습니다.
주먹쥐고 제부를 때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만 하라고...
죽은 사람 잊고 00이 너도 살아야되지 않냐고...

제부는 처음엔 무슨 일인가 얼떨떨하다가 곧 알아차리고 그냥 씁쓸하게 웃기만 하더군요.

엄마 말리다가 저도 너무 가슴 아파 울었습니다.
결혼 액자도 그자리에 얼짱각도라며 예쁘게 나왔지하고 동생이 자랑하던 셀카들은 인화되서 보드에 붙여져 있고...
그냥 그 집 모든게 동생 그자체 였습니다.

그 날은 어떻게 동생 집을 나와 집에 왔는지 기억이 안나요.

그리고도 제부는 여전히 주말마다 집에 옵니다.
엄마가 몇주는 일부러 쌀쌀맞게 대하며 이제 오지말라고 내쳤는데 능글맞게 대처하던 제부가 저저번주 결국 주저앉더니 어머님 저 내치면 죽어요라며 우네요.

 

 

 

 

그 날 온가족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제부말로는 집을 아무리 동생이 있던 그때대로 해도 너무 외롭고 힘들고 동생이 없는것만 뼈저리게 느껴지더래요.
그나아 우리집에 오면 동생한테 나던 냄새 동생하고 같은 말투쓰는 집안 사람들 동생이 해주던 음식 맛하고 비슷한 엄마 요리...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날 그렇게 부모님과 제부 저 넷이서 펑펑 울고 (동생 죽은 날보다 더운것 같아요)저번주부터는 다시 리바이벌입니다.

다시 동생은 내 방 침대에 잠들고 다른 가족들은 모여서 밥먹고 아빠와 제부는 술대작하고 그 상황으로...
옳지 않다는것도 이럴수록 제부는 더 동생 못놔주고 저렇게 죽은 동생 추억에만 갇혀 사는 건데...

제부를 어쩌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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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포켓] 제부이야기 3년 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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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에 군대 다녀와서 24살부터 일 시작했습니다. 승강기 설치

그 때 사수나이 48, 18살때부터 일 시작하신 베테랑

 

부산에서 사장일 하다가 사람들 관리하고 소장을 관리하고, 본사랑 대화하는거 싫다며

대구에 25년 이 일로 알고지낸 저희 사장밑에서 거의 사장에 준하는 일을 하

던분이셨습니다.

 

처음 일 시작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승강기에 40kg 짜리

돌로 된 무게추 50개 가량을 옮겨넣는 공정이 첫날에 있었는데

제가 5개도 못 옮기고 헥헥 거리고 있으니 사장은

아이고, 점마 저래서 일하겠나

 

 사수는 웃으면서 임마! 그거 중간에 가다가 놓거나 주저앉으면 니 힘으로 다시 못 일어나 힘내했던 첫날

 자기 어릴때 생각난다며 또 자기 딸이 제 또래라며 자를 엄청나게 챙겨주셨습니다.

 

 

딸은 서울에 있고 이혼하셔서 혼자 대구에 계셔서 적적하신지 일 끝나면 항상 술 한잔할래? 고기 먹으러 갈래?

저도 저 챙겨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거의 항상 함께 했습니다

제 이름이 경록 인데 저희 엄마가 저를 부르는 호칭이 록아 갱록아 인데

 

 

희한하게도 이 사수분도 저를 갱록아, 갱록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좀 입이 거칠어서 일 안물리면 혼잣말로 욕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분 이긴 했지만

안그래도 저한텐 엄청 잘해주신

 

 

사장이 저한테 짜증낼때가 있으면 옆에서 아이한테 짜증내지마!! 관두면형 탓이야!! 하고 장난도 치시고

사장이 와씨 담배좀 끊어라 하면 펴! ! 살놈은 술, 담배 다해도 산다 하면서

항상 장난스레 제 편들어주시고

 

힘든가 보이면 한대 띠고 하자고, 사장한테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퇴근하자 고 다 저 챙겨주신다고 그랬네요

낚시를 굉장히 좋아하시던 분이고 저는 낚시를 한적도 본적도 없는데 통영으로 자주 저 데려가셔서

 

가르쳐주시고 낚싯대도 사주시고 65살만 딱 되면 고향(진도)가서 배 하나 사 가지고 매일 낚시하고 사는게 꿈이라고 하셨는데 딱 3년동안 하시다가 가셨네요

항상 전복이나 감생이 김 같은것 와서 먹으라고 주시고 하셨는데..

 

제가 5년전에 소장을 달고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선물이라고 더블캡도 사주시고, 적재함도 달아주시고

사장이 일 그만두면서 안쓰던 장비들 본인이 말해서 저한테 다 주셨습니다. 원래 자기 일 그

만두기전에 젊은 애 한명은 먹고 살게 해줘야되지 않겠냐며 안팔고 놔뒀다고

 

그때 진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제 오늘 일 파했습니다.  일단 어제 밤에 갔다가 새벽에 와서 누웠는데 잠은 안와서 말똥말똥 눈뜨고 있다가

 

 

방금 일어나서 글 적네요 지금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이런 말 하면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1년에 4~5번 봤던 외할머니 돌아가셨을때는 할머니의

 

죽음에는 눈물이나질않았고 엄마의 통곡에 눈물이 났었는데

사수분 돌아가시니 진짜 눈물이 펑펑 나네요. 건강하시다고 생각했는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일단은 한번 더 다녀와야겠네요. 내일 발인까지도 지켜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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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글입니다
제가 밤새 고민하느라 잠을 잘 못잤습니다
그리고 댓글도 읽어보았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닌것같아서
거의 새벽 네시부터 전남편한테 전화했어요.
계속 안받더라구요.
자고있어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을 했으나

 

 

거의 열세통째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 들어보니 자던사람목소리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내가 왜이렇게 오랫만에 전화기 불나도록 연락했는지 이유를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거다 살아계실때 아버님 못찾아뵈었으면 늦었지만 돌아가신 이후라도 찾아뵙고 마무리를 하는것이 자식된 도리이다.

 

길가는 제 삼자붙잡고 물어봐라 이것이 지금 맞는 행동이며,
모르는 사람들도 다들 아버님 쓸쓸하게 돌아가신 것에 대해 다들 안타까워 하고있다.
당신 어떻게 인생사는거 내 알바 아니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부모를 저렇게 방치하는건 아니지 않냐 엄연히 자식이 있는 분이 왜 무연고 처리가 되어야 하냐. 아버님 댁에 있는 물건이라도 하다못해 가져가라 거기 당신 어릴적 사진이나 그런 추억도 있을텐데”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전남편이 대답하길 지금 갈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왜 못오냐 부모 시신도 수습못할정도의 상황이 어딨냐 라고 물으니 이유는 돈이 없답니다.
지금자기에게 남은건 여기까지 오기위한 차비정도가 전부인데

 

 

자기가 지금 몸이 아파서 약을 먹고 있고,
이 돈은 약값으로 써야하는데 사실 약값으로도 부족한 금액이라며
법적으로 남이라 위임장 이런게 필요하면 써줄테니
대신좀 마무리를 해달라고 합니다.

 

 

제가 당신 일 안다니냐고 하니까 몸이 안좋아 그만두고 쉰지 일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퇴직금은 어디갔냐고 하니
퇴직후 자영업을 해보고싶어서 퇴직금 부어서 아는 사람이랑 동업을 하려했으나 사기당해서 돈을 날려서 지금 소송중에 있다네요.

 

 

하여간 몸이아픈이유 사기당한 이유 그래서 돈이없는이유 같은 내용들때문에 자기는 가고싶어도 갈수가 없다고 해서
장례비용 내가 낼테니 일단은 몸만와라
눈으로 아버님 살다간 흔적을 당신이 직접 확인해라
그것만큼이라도 해야한다 라고 해서
결국 오늘 오후 한시까지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는 조언해주신 분들 말씀대로
시아버님 장례치러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돈이야 들겠지만, 댓글 달아주신분들 말씀중에
전 시아버지이기전에 저에게 잘해주셧던 어르신이고
안타까운 인생을 살다가 쓸쓸하게 가신 분이고,
당신 친자식보다도 말년엔 저를 더 자식같이 생각하시고
의지하셧기에 외면하면 안될것같습니다.

 

 

미신을 믿진 않지만
그냥 제가 외면하면 저세상 가셔도 계속 울고계실것같아요.
사실 이걸 저희 친정부모님은 모르십니다.
왜냐하면 전남편과 이혼한 이유를 저희 친정부모님은 알고계셔서

 

 

전 시댁, 특히 전남편에 대해서는 저희 친정부모님은
증오를 넘어 아직까지도 저주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시아버지가 저에게 각별했던 그런걸 이해시켜드리고 싶어도, 그런 직접 경험을 했던 사람간에만 느낄수있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말로 설명해 제삼자를 이해시키기에는 워낙 전남편의 과오가 크기에 그냥 친정부모님 이해시키는건 그만두기로 하고 알리지않고 제가 알아서 하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전남편 만날 준비를 하려구요
청심환도 하나 사서 먹고.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단정한 옷도 찾아놓고,
혹시모르니 유품을 챙겨올 큰 가방도 하나 챙겨놓고
차 뒷자리도 비워놓으러 갑니다…
다들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남이지만 힘모아 애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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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0대 중반 그냥 평범한 돌싱녀구요.
31에 결혼해서 40까지 결혼생활을 했었어요.

저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전남편이 이유없이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갖는걸 미루고 해서
부부관계도 잘해야 두달에 1회 이런식이었었는데
39살때 이제 저도 노산이고 해서 조바심이 나기에

 

구정 명절에 일부러 시아버님 계시는 자리에서
진지하게 왜 아이를 안가지려하는지 남편에게 이야기하다가
전남편이 자신이 동성애자 라는거를 아버님과 제 앞에서 고백햇고,
아버님은 그자리에서 졸도 하셧어요
(시어머님은 전남편 대학생때 진즉 돌아가시어 안계시고 전남편이 외동아들입니다)

 

 

저는 이사람마음을 돌려보기위해 일년을 버텼고,
남편은 가정을 지키려기보단 그냥 동성애자길을 갔어요.
그래서 그런이유들로 인해 제나이 40에 이혼하엿고,
지금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네요.

시아버님은 그때 이후로 한 육개월뒤에 중풍이 오셧고
전남편은 거의 아버지랑 연을 끊다시피하였고
그시점 부터 본격적으로 아얘 집에도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기에

 

 

제가 거의 시아버지 병수발을 했었지요.
안할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인간적으로 시아버님이 너무 가엽고 안타까웠어요.
돌봐드리는동안 시아버님이 거의 매일 하루에 한번씩
성치도 않으신 발음으로 미안하다고 저한테 그러셨고,
편마비가 오셧는데도 저한테 간혹 편지를 써서

 

 

예쁜 며느리야 너만한 딸이 없다
이렇게도 써주시고
당신 생신인데도 저한테 며느리가 먹고싶은것으로 시켜라
이러시고 참 다정하게 대해주셧는데 (물론 이런일이 있기 전에도 좋은 시아버지였습니다)
이혼확정된날

 

 

아버님께 이제 아들이랑 호적상으로도 남남되었다고
오늘이 제가 돌봐드리는 마지막 날이 될둣싶다고 하니
우시면서 이제 여기오지말라고 그만 고생하라고
어눌하게 말씀하시던 장면이 5년째 머릿속에 맴돌아요.

그런데 어제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청소업체에서
아버님이 혼자 거주하시다가 고독사 하셨는데 지병때문이었던것같다. 돌아가신지 일주일 정도 지난걸로 추정된 상태에서
발견이 되셧는데
아버님 핸드폰 전화번호부 목록중에 기관 빼고 개인번호는
아들, 며느리 두개뿐이라서
아들한테 전화하니 시신인수 거절하셔서
며느리한테 전화드렸다고
오셔서 한번 현장을 보시고 찾아가실 유품이 있으시면 찾아가셔야 할것같다고 하셔서

 

 

제가 지금은 이혼한 상태라 서류상으론 남인데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청소업체에서 완전히 다 작업마치는데 삼일정도 걸리니
그 안에 오셔야 한다고 했고
내일이 마지막 정리작업 날일듯한데
내일까지 결정을 해야합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 전 시아버님 유품이나
흔적을 가져와서 보관하거나 장례를 치뤄드려야 할까요?
저한테 너무 잘해주셧던 분이고
항상 미안하다고 하시던 분이었지만,

이미 남남이 된 세월이 오년이되어가고
제가 더이상 개입할 자리가 아닌것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봐야 하나요?
마음에 찬바람이 불고 쓸쓸합니다…
오늘 하루종일 이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비까지 종일 내려 더 착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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